[BLUE GUARDIAN = 글/사진 최태은 기자, 선수 본인 제공]
# 야구를 시작하기까지
이승현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동네 친구를 통해 처음 야구를 접했다. 특별히 야구에 재능이 있다고 느낀 순간은 없었지만, 친구를 따라 시작한 야구가 자연스럽게 선수 생활로 이어졌다.
중학교 때 취미로 다니던 야구교실에서 야구부 감독님의 제안으로 선수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 야구를 하고 싶기는 했는데, 그때는 제가 스스로 야구를 하고 싶은 마음을 조금 부정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제안해주셨고,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하면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선수 생활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가족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부모님과 친척들은 운동선수의 길이 쉽지 않기 때문에 야구를 시작하는 것을 반대했다. 결국 한 시간 이내에 통학할 수 있는 야구부가 있는 학교라면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고,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야구부가 새로 창단된 학교에 진학하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 마운드에서 다시 시작한 야구

경주고에 유격수로 입학한 이승현은 2학년 때 투수로 포지션을 바꾸게 되었다. 입학 당시 자신을 아껴주던 감독이 바뀌면서 출전 기회가 줄었다. 그런데 팀 내 투수들이 잇따라 부상을 입으며 투수가 부족해지자, 경기에 나서지 못하던 타자들을 중심으로 투수를 경험해 보는 기회가 생겼다. 이승현은 그중에서도 공을 비교적 잘 던졌고, 투수로 전향하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시작한 투수 생활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당시의 전향은 이승현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타자가 더 재밌긴 했어요. 그래서 아직도 조금 미련은 있어요.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타자보다는 투수에 재능이 있는 것 같고, 투수로 바꾼 게 결과적으로 잘된 것 같아요.”
포지션을 바꾸기 전 고등학교 2학년은 이승현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잘하는 동기들과 실력 차이를 느끼며 스스로 위축됐고, 감독이 바뀌면서 경기에 나설 기회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마운드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이승현은 다시 야구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 오늘의 이승현이 있기까지
이승현은 자신이 야구를 시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이영욱 감독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영욱 감독은 야구뿐만 아니라 선수로서 갖춰야 할 태도 인성도 강조했다.
“야구도 많이 가르쳐주셨고, 야구 외적으로도 많이 챙겨주셨어요. 특히 인성을 많이 강조하셨던 감독님이에요.”
닮고 싶었던 롤모델도 있었다. 타자였던 시절에는 어린 시절부터 응원했던 삼성 라이온즈의 김상수를, 투수로 전향한 뒤에는 윤석민을 동경했다. 김상수를 좋아했던 마음은 등번호로도 이어졌다. 대학교 3학년까지는 7번을 달지 못했는데, 4학년이 되면서 김상수를 좋아했던 마음을 담아 7번을 선택했다.
“어릴 때 삼성 팬이어서 김상수 선수를 좋아했어요. 저도 김상수 선수처럼 되고 싶었어요.”
투수로 전향한 뒤에는 자신과 스타일이 비슷한 윤석민의 투구를 보며 영향을 받았다.
“윤석민 선수가 공을 잘 던지시는 것도 멋있었지만, 머리를 잘 활용해서 타자와 승부하는 모습을 닮고 싶었어요.”
# 중앙대에서의 시간
이승현은 처음부터 중앙대에 진학할 예정은 아니었다.
“중앙대에 잘하는 선수들이 많이 지원한다고 해서 원래는 원서를 안 넣으려고 했어요. 붙을 줄도 몰랐는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원래 체육교육과를 희망해서 다른 학교에 가고 싶기도 했는데, 와보니까 정말 좋은 학교였어요.”

4년 동안 가장 많이 의지했던 선수로는 조국을 꼽았다. 1학년 때 같은 방을 썼고, 투수와 포수로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기회도 많았다.
“1학년 때 방을 같이 썼어요. 조국이 성격도 좋고, 투수랑 포수니까 야구 얘기도 많이 했어요. 4학년 때도 시합 갈 때는 항상 같이 방을 썼어요.”
중앙대에서의 야구는 고등학교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정해진 방식대로 따라가기보다 선수 스스로 필요한 부분을 찾아 운동하는 환경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조금 강압적이고 분위기도 엄숙했는데, 대학은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는 게 좋았어요. 대학생이면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니까 자기한테 필요한 운동을 더 할 수 있고, 그런 부분이 효율적인 것 같아요.”
중앙대 야구부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가장 감사한 사람으로는 김상록 코치를 꼽았다. 김상록 코치 덕분에 출전 기회를 얻고, 포기하지 않고 야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코치님이 감독님께 제가 시합을 나가야 한다고 계속 어필해주셨어요. 제가 야구를 잠깐 열심히 안 했던 시기도 있었는데, 4학년 때까지 꼭 야구를 열심히 하라고 말씀해주셔서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었어요. 야구적인 부분에서도 제가 안 좋은 습관이 있었는데 그걸 고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투구할 때 발끝과 발끝이 일자로 맞아야 하는데 왼쪽 다리가 크로스되는 경향이 있었거든요. 컨디션에 따라서 기록도 많이 달라졌는데, 이 부분을 고치면 공도 더 빨라지고 기복도 줄어들 거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중앙대에서 보낸 4년을 돌아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순간은 최근 왕중왕전이었다. 특히 부산과학기술대학교를 만나 연장 10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끝내기 승리를 거둔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최근 왕중왕전 준우승이에요. 특히 부산과기대전에서 끝내기로 이겼던 게 기억에 남아요. 사실 다친 선수들이 많아서 U-리그 때처럼 베스트 라인업이 아니었고, 저희가 결승까지 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대진도 좋지 않았는데 선수들이 한 명 한 명 잘해줘서 결승까지 갈 수 있었고, 그래서 더 기뻤어요.”
# 대학생 이승현

그라운드 밖에서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대학생활을 즐겼다. 평소 게임을 좋아해 친구들과 자주 게임을 하며 여가 시간을 보냈다.
“쉴 때는 게임을 해요. 원래 롤을 좋아하는데 친구들이 배그를 하자고 해서 그것도 같이 하고 있어요. 공부도 열심히 해보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야구 외의 시간에는 친구들과 놀면서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 졸업을 앞두고
졸업을 앞둔 이승현에게 가장 큰 고민은 앞으로의 진로다. 아직 명확하게 하고 싶은 일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졸업 후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한 고민이 남아 있다.
“드래프트에서 지명이 안 되면 빠르게 군대에 가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군대에 가서 생활하면서 앞으로 제가 뭘 할지 찾아보려고 해요.”
야구를 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한 이승현에게 야구는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로 남았다.
”저에게 야구는 선생님인 것 같아요. 야구를 하면서 야구 말고도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어요. 그래서 저한테 야구는 선생님 같은 존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