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GUARDIAN = 글 최태은 기자, 사진 이수정 기자, 선수 본인 제공]
# 야구를 시작하게 된 이유
변관호가 처음 야구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야구를 좋아했던 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야구를 시작했다. 그전에는 수영을 했지만, 야구를 시작한 이후에는 다른 진로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형이 야구를 좋아해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어요. 수영도 했었는데, 형을 따라 야구를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어서 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야구를 계속하게 됐고, 다른 꿈을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쯤 제가 야구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선수 생활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부모님은 걱정도 하셨다. 하지만 형 역시 야구를 하고 싶어 했던 경험이 있었고, 결국 야구를 그만두게 된 형과 달리 변관호가 계속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부모님도 그의 선택을 지지해줬다.
“부모님은 처음에 제가 야구하는 걸 걱정하셨어요. 형도 원래 야구를 하고 싶어 했는데 그만두게 된 경험이 있어서, 제가 야구를 계속하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많이 응원해주셨던 것 같아요.”
# 쉽지 않았던 시작, 계속된 도전
중학교 1학년 때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변관호에게 단체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외부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매일 아침 러닝을 하는 생활도 이어졌다. 처음에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생활을 시작하자 어려움이 컸다.
“중학교 1학년 때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외부 음식도 못 먹고 매일 아침에 러닝도 뛰어야 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다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는데, 3일 만에 콜렉트콜 전화기로 부모님한테 못 하겠다고 연락했어요.”
힘든 시기는 이후에도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고,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1학년 때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감독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만큼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 상황이 더욱 아쉬웠다.
그럼에도 변관호는 야구를 계속했다. 쉽지 않은 순간마다 다시 도전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그렇게 4년의 대학 생활을 지나 마지막 시즌까지 마주하게 됐다.
# 기회를 찾아, 비봉고로
2019년 비봉고에 입학한 변관호는 처음부터 투수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감독에게 야수가 잘 풀리지 않는다면 투수를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비봉고 입학 이후 투수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마운드에서 자신의 강점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투수로서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비봉고는 변관호가 입학하기 1년 전인 2018년 창단한 신생팀이었다. 팀의 성적보다는 1학년부터 경기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는 새로운 팀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길을 선택했다.
“비봉고가 새로 만들어진 팀이었잖아요. 저는 팀 성적보다는 1학년 때부터 경기에 나가면서 기회를 받을 수 있는 게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 중앙대에서 맞이한 새로운 시작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대학 진학을 준비해야 했다. 당시 실기에서 자신이 있었고, 실기를 중요시하는 대학을 중심으로 지원했다. 실기 비중이 높았던 중앙대에 입학하며 변관호는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중앙대에서의 4년 동안 가장 많이 의지했던 선수는 이승현이었다. 같은 포지션에서 함께 훈련하고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힘든 순간에도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승현 선수한테 4년 동안 가장 많이 의지했던 것 같아요. 같은 투수이기도 하고 서로 입장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김상록 코치는 야구뿐 아니라 그 외적인 부분에서도 영향을 준 사람이었다. 말수가 많지 않고 차분한 성격이지만 먼저 말을 걸어주고 농담을 건네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김상록 코치님이 저한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신 것 같아요. 야구 외적으로도 많이 챙겨주셨어요. 제가 말도 많이 없고 차분한 성격인데 먼저 말도 걸어주시고 농담도 해주셔서 좋았어요.”
대학에 입학하며 변관호가 처음 세운 목표는 150km의 구속을 기록하고 2년 만에 얼리 드래프트 지명을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수 생활을 이어가면서 모든 일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2학년을 지나면서부터는 목표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졌다.
야구적인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전과 달리, 야구 외적인 부분에서도 스스로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처음에는 150km를 던지고 2년 얼리 드래프트로 지명받는 게 목표였어요. 그런데 야구가 뜻대로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2학년이 지나면서부터는 야구적인 것도 좋지만, 야구 외적으로도 제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내면적인 부분을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그렇게 4년의 대학 생활을 지나 마지막 시즌을 맞이한 변관호에게 올시즌 왕중왕전은 특별한 무대였다. 이전에도 결승에 진출한 경험은 있었지만 모두 지역대회였기에, 전국대회 결승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특히 준결승전에서는 큰 대회에서 처음으로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상대인 신안산대학교에는 고등학교 시절 함께했던 후배들이 많았고, 졸업 후 다른 팀에서 다시 만난 후배들을 준결승이라는 큰 무대에서 상대했다는 점에서도 기억에 남는 경기였다.
“준결승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큰 대회에서 선발로 나간 게 처음이었어요. 신안산대에 고등학교 후배들이 많았는데, 후배들을 상대로 준결승에서 경기한 것도 뜻깊었어요. 경기 끝나고 따로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준결승을 넘어선 변관호는 처음으로 전국대회 결승 무대까지 경험했다.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는 경기가 결승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컸다. 팀에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던 만큼 아쉬움도 남았지만, 동료들과 함께 전국대회 결승이라는 무대를 경험한 것에 대해서는 고마운 마음이 컸다.
# 오래된 친구, 야구
대학에서의 야구 생활을 마친 변관호에게 이제 새로운 고민이 남았다. 아직 구체적인 진로를 정하지 않은 만큼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지는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다만 오랜 시간 함께해온 야구가 그의 삶에서 쉽게 떼어낼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은 분명했다.

선수로서 수많은 순간을 지나온 변관호에게 야구는 이제 단순히 해온 운동을 넘어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와 같은 존재가 됐다.
“야구는 저한테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이에요.”
마지막을 앞두고는 슬픔이나 아쉬움이 크게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마지막을 마주한 지금, 그에게 더 크게 남은 것은 후련함이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되게 슬프고 부정적인 감정이 남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 후련한 마음이 크고, 마무리도 좋았던 것 같고, 적당한 타이밍에 행복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행복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