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GUARDIAN = 글 최태은 기자, 사진 이수정 기자, 선수 본인 제공]
# 다섯 살에 만난 야구

이준서는 다섯 살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아버지와 큰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했다. 처음에는 그저 야구하는 것이 재미있어 시작했지만, 그렇게 야구를 즐기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 시작을 다짐했다.
처음부터 가족 모두가 선수 생활을 반긴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울면서 야구를 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부탁했고,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찬성했지만 어머니와 할머니는 반대했다. 비용도 많이 들지만, 시작한다면 끝까지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이준서의 진심이 가족에게 전해지면서 선수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중학교 1학년까지는 내야와 외야를 오가며 경기에 나섰다. 이후 중학교 2학년부터 외야수로 자리 잡았다.
“중학교 1학년 때는 내야수와 외야수를 같이 했는데, 2학년 때부터 외야수로 자리 잡았어요. 발이 빠른 편이기도 하고, 내야보다는 외야 수비에 더 자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 흔들려도 멈추지 않았던 고등학교 시절
덕수고에 진학한 뒤에는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해야 했다. 훈련량이 많다 보니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부상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팔꿈치를 다쳤고, 3학년 때는 등 부상으로 중요한 시기에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드래프트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은 중요한 시기였기에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더욱 힘들게 다가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등 부상으로 중요한 시기에 경기에 못 나가서 많이 힘들었어요. 방에만 있었고 부모님한테 말도 많이 안 했어요. 병원도 여러 군데 다녀봤는데 결국 작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았어요. 그때 안 좋은 일도 결국 끝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다리다 보면 결국 지나간다는 것도 배웠어요. 그래서 힘든 일이 생겨도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해요.”
학교 생활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경기와 훈련으로 수업에 빠지는 일이 많았고, 수학여행이나 수련회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그만큼 야구부가 아닌 친구들과 가까워질 기회도 많지 않았다.
어려움도 많았던 고등학교 시절이었지만, 이준서는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힘든 순간에도 야구를 놓지 않고 자신의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 중앙대에서 보낸 4년의 시간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하고 처음에는 상심이 컸다. 대학 진학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몇몇 대학에 지원했고, 친구들에게 중앙대 발표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결과를 확인했다. 확인해 보니 최초합격이었다.
“친구들과 PC방에 갔는데 친구가 중앙대 발표날 아니냐고 해서 확인해봤어요. 그런데 최초합이더라고요. 신기했어요.”

덕수고 시절 39번을 달았던 이준서는 중앙대 2학년부터 15번을 달았다. 선배들이 좋은 번호를 가져간 뒤 남은 번호 중 자신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번호를 골랐다. 한 번 달고 뛰면서 자연스럽게 정이 들었고, 이후에도 계속 15번을 달았다.
“선배들이 번호를 먼저 고르시고 남은 번호 중에 저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 번호를 골랐어요. 한 번 달고 나니까 정이 들었어요. 뒤에서 등번호랑 이름을 봤을 때 ‘어, 나쁘지 않은데?’ 싶었어요. 약간 핏이라고 해야 하나, 저한테 잘 맞는 느낌이었어요.”
대학 야구 생활에서 가장 의지했던 선배는 천정민이었다. 야구부에는 선후배 간 ‘라인’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천정민은 이준서의 라인 선배였다. 최근 학교에 찾아온 천정민을 다시 만났을 때도 반가운 마음이 컸다.
“천정민 선배가 제 라인 선배였어요. 같은 포지션이기도 해서 저를 잘 챙겨주셨어요. 먹을 것도 진짜 많이 사주셨고, 야구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많이 챙겨주셨어요. 둘이서 대화했던 시간도 많아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대학 생활에서 야구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최종은 코치였다.
“최종은 코치님이 올해 오셔서 처음에는 저희랑 친해지기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동계 때부터 친하게 지내게 됐어요. 타격도 많이 알려주셨어요. 제가 타격을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르게 새로운 걸 많이 알려주셨어요. 원래는 팔을 많이 사용하는 타격을 했는데, 하체 쓰는 법을 배우면서 상체에 힘을 빼고 하체로 받아치는 타격을 익혔어요.”
이준서에게는 대학에 와서 다시 만난 특별한 인연도 있었다. 덕수고 시절 유일하게 기록했던 홈런과 관련된 이야기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경주고와의 경기에서 대타로 나서 홈런을 기록했는데, 당시 그 홈런을 맞은 투수가 중앙대에서 다시 만난 이승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경주고랑 경기에서 대타로 나가서 홈런을 쳤어요. 그때는 상대 투수가 누군지 잘 몰랐는데, 대학교 와서 이승현 선수가 ‘너 2학년 때 홈런 치지 않았냐. 그 홈런 맞은 게 나다’라고 하더라고요. 보통 타자가 어떤 투수한테 홈런을 쳤는지는 기억해도 투수가 누가 홈런을 쳤는지는 잘 기억하지 않을 것 같아서 신기했어요.”
중앙대 야구부 생활을 시작하고는 경기 전후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고등학교 때는 ‘무조건 이겨야지’라는 생각이 강했다면, 대학에서는 자신의 컨디션과 경기 준비까지 스스로 관리해기 시작했다. 이준서는 그 과정에서 야구를 대하는 태도도 한층 달라졌다고 말했다.
# 야구 너머의 대학 생활

야구 외적인 시간에 이준서는 음악을 즐겨 듣는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는 것을 좋아하고, 운동할 때도 음악을 자주 듣는다. 1군 무대에 서게 된다면 좋아하는 게임 유튜브 엔딩곡인 ‘Careless’를 등장곡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대학생활에서는 공부에도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거의 안 했는데, 대학 와서는 공부를 좀 해보고 싶었어요. 요즘 학생들은 태블릿이나 노트북으로 공부하길래 부모님한테 태블릿을 사달라고 했어요. 2학년 때 사주셨는데, 제가 공부한다고 하니까 부모님도 좋아하시면서 사주셨어요. 그때부터 도서관에 가서 공부도 해봤어요. 3학년 때 들었던 ‘취업역량개발’이라는 선택 교양도 기억에 남아요. 졸업하고 취업하는 것에 대해 정말 잘 설명해주셔서 그때는 집중해서 들었던 것 같아요.”
# 대학 마지막 시즌을 마치며
오랜 기간 야구와 함께해온 이준서는 앞으로 야구 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악기를 더 배워보고 요리에도 시간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새로운 것들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야구에 대한 목표 역시 여전히 남아 있다.
“오랫동안 야구를 했으니까 이제 다른 것도 해보고 싶어요. 악기도 배워보고 싶고 요리도 해보고 싶어요. 요리는 제가 엄마보다 잘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야구는 계속 도전해보고 싶어요. 관중이 가득 찬 경기장에서 1군 경기를 뛰어보는 게 목표예요.”
오랜 시간 야구를 이어오며 여러 부상도 겪었던 이준서에게 2026년은 대학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무엇보다 부상 없이 마지막 시즌을 마쳤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시간으로 남았다. 이제 새로운 도전을 앞둔 그는 자신에게 짧은 한마디를 건넸다.
“많이 다치고 부상도 많았었는데, 대학 4학년 마지막 시즌을 부상 없이 보내줘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