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2017년 3월 중대신문 시사기획 기사에서 전재하였습니다.]
‘역시 rookie rookie my super rookie rookie boy!’ 가수 레드벨벳의 노래 「 Rookie」의 한 구절이다. 단순히 신인선수를 의미하는 rookie 앞에 super가 함께 쓰이자 단어에서부터 낯설고도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는 구가 완성됐다. 이 ‘Super Rookie’가 중앙대에도 등장했다. 입학 전부터 중앙대 스포츠단에 스포트라이트를 몰고 온 ‘역대급’ 새내기다. 농구부의 양홍석과 박진철, 야구부의 김진수, 축구부의 최재영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신입생의 설렘과 프로 선수로서의 의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매력적인 네 선수를 만나봤다.
다시 올 전성기를 그리며, 농구부의 양홍석과 박진철 선수
-걸그룹 춤 따라 추기라니, 의외다.
“아, 시키면 안 돼요. 하이라이트 부분만 짧게 출 수 있어요. 고등학생 때 장기자랑에서 「TT」를 다 같이 췄었어요. 요즘도 운동할 때 큰 스피커에 노래를 틀고 「cheer up」이 나오면 형들이랑 같이 추곤 해요.(웃음) 겉보기와 달리 흥이 많아요.”
-표정만 봐도 그런 것 같다. 친구들이랑도 잘 지낼 것 같은데.
“운동부끼리는 이미 다 친해요. 다른 과 친구들과도 친해지고 싶은데 운동부 수업이 따로 진행되는 바람에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제가 남고 출신이라 개강 첫날에 여자 동기들 만날 기대에 ‘꾸민 듯 안 꾸민 듯’ 입고 갔거든요. 그런데 남학생들만 있는 거예요! 엄청 당황했죠.(웃음) 그래도 오늘(지난 8일) 처음으로 친구들이랑 말을 해서 앞으로 기대가 돼요.”
-중앙대 입학을 축하한다. 하지만 농구팬들은 아쉬워하는 행보였다.
“농구팬분들은 저를 프로경기에서 보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프로로 진출하기 전에 더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다른 대학의 명성도 있지만 지금의 양형석 감독님이 잘 이끌어주실 거라 믿었고 1학년 때부터 실전 경험을 익힐 수 있다는 점이 중앙대를 선택한 이유에요. 실제로 감독님은 제가 최선을 다하도록 이끌어주세요. 많은 시간 동안 제 기분을 배려해주시면서 부족한 점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을 해주시거든요. 다른 팀보다 선후배 관계가 친밀한 점도 너무 좋아요. 우린 서로 그냥, 진짜 친하거든요!”
-농구 말고 대학 생활은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대학 생활을 통해 농구를 더 잘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밖에 없어요. 사실 미팅도 하고 술도 먹고 해보고 싶은 건 많지만, 전 아직 그럴 때가 아니거든요. 아버지가 엄격하셔서 23살까지 술, 연애 모두 금지에요. 심지어 저 통금도 있어요.(웃음) 그런데 아버지가 절제하도록 도와주신 덕에 농구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한눈팔지 않고 농구만 하려고요. 농구만 해도 충분히 재미있으니까요.”
-곧 ‘2017 대학농구리그’가 시작된다. 목표가 있다면?
“당연히 우승이죠.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요. 다가오는 16일에 개막전이 열리는데 첫 상대가 주로 3,4학년 형들로 구성된 강팀 연세대 농구부거든요. 하지만 저희 팀이 다 같이 하나가 돼 뛰면 이기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저희 팀의 탄탄한 팀워크는 시간이 갈수록 빛날 거에요. 그래서 플레이오프 때 멋진 마무리를 보여드리는 것이 목표예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또 하나의 목표가 있는데, 대학 대표팀에 선발되는 거죠.”
-그건 당연히 되지 않을까. 고교 랭킹 1위인데.
“1등은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만 통했죠. 대학 리그에서는 아직 꼴등이라고 생각해요. 멋지게 데뷔하고 싶은 만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최대어, 최고 빅맨…. 뒤를 따르는 엄청난 타이틀이 부담스럽지는 않나.
“전혀요! 그냥 담담해요. 전 그만큼 잘할 수 있거든요.(웃음) 준비도 철저히 해왔고요. 지난해 11월부터 안성캠에 와서 형들이랑 훈련을 시작해 팀워크를 다졌어요. 개인적으로는 겨울방학 때부터 따로 웨이트 훈련을 하고 매일 아침 일찍 먼저 일어나서 두 시간씩 운동하고 있어요. 주변에서 1등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을 종종 해주세요. 물론 저도 불안하죠. 그래서 더 많이 연습하는 것 같아요. 뭐든 더 하는 것이 좋으니까요.”
-매 순간 열심히 해야 하는 삶이 피곤해 보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요. 훈련할 땐 항상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서 오로지 집중해야 해요. 매 순간 제 의지를 끊임없이 점검하죠. 그렇지 않을 땐 감독님도 바로 아시고 조언을 해주시고요. 물론 힘든 체력훈련을 할 땐 장난으로 ‘짐 싸야겠다’ 하고 웃기도 하지만 그 순간뿐이에요. 진지하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경기가 잘 안 풀려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풀릴 때까지 슛 연습을 하죠. 그러면 한결 기분이 나아지거든요.”
-재능인 줄 알았는데 순 노력으로 일궈온 결과다.
“그 정돈 아니에요.(웃음) 주말에 외박을 받으면 친구들이랑 피시방 가서 게임도 하고 영화도 자주 봐요. 고기 먹으러 가고 야식으론 파닭 시켜먹고…. 농구를 하긴 하지만 특별하기보단 정말 평범한 대학생이에요. 다만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취한다’는 말을 믿어요. 꾸준한 노력이 절 가꿔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제 마음가짐을 정비하려고 하죠.”
-마지막으로 중앙대 재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중앙대에서 친구들과 선배님들을 만나서 매일 즐거워요. 올 한해 열심히 뛰어서 과거 중앙대 농구부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는 전성기를 이끌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웃음)”
새로운 출발선에 선 마무리 투수, 야구부의 김진수 선수
날카로운 변화구로
마운드를 지키는 작은 거인
군산상고가 7-5로 앞선 9회 말. 경기 종료까지 한 명의 타자만을 남겨두고 있다. 투수와 타자 사이에 치열한 수 싸움이 이어진다. 직구인가, 변화구인가. 투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공을 던졌다. 궁지에 몰린 타자는 있는 힘껏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공은 포수의 미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경기장에 우렁찬 함성과 함께 선수들이 뛰쳐나왔다. 전국체육대회 야구부문 고등부(전국체전) 우승컵이 주인을 찾아가는 순간이었다. 우승컵을 뒤로하고 중앙대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김진수 선수(스포츠과학부 1)의 이야기를 담았다.
-입학을 축하한다. 고등학교 때와 훈련 환경이 많이 바뀌었을 텐데.
“고등학교 때와는 다르게 체계적으로 훈련 일정을 관리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중앙대에 입학하기 전에는 즉흥적으로 훈련을 하다 보니 일정이 불안정할 때가 많았거든요. 요즘은 감독님이 짜주시는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고 있어요. 스케줄만 지키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죠. 언제 훈련이 있을지 몰라서 일정을 잡지 못하고 학교에 갇혀 살았던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해방감마저 들어요.(웃음)”
-지금까지 야구를 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
“많죠. 13년 동안 야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고등학교 1,2학년 때였어요. 제 체구가 야구 선수 치고는 작은 편이잖아요. 그래서 고등학교의 첫 2년 동안 마운드에 서지 못했던 점이 아쉬워요. 열심히 훈련했고 스스로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경기에는 나서지 못했으니까요. 돌이켜보면 참 힘든 시기였네요.”
-그랬을 것 같다. 어떻게 극복했나.
“아쉽기는 했지만 감독님의 판단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어요. 투수의 실수는 곧 실점으로 이어지니까요. 그래서 3학년 때는 더 많이 노력했어요. 느린 구속을 보완할 수 있도록 변화구를 더 날카롭게 다듬고 타자와의 수 싸움에 신경을 많이 썼죠. 결국 감독님이 제 노력을 알아주셔서 전국체전에서 마무리 투수로 출전할 수 있었어요.”
-전국체전에서 모든 경기에 등판했다고 들었다.
“지난해 가을이었죠. 결승전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네요. 사실 그날 등판할 줄 모르고 있었는데 감독님께서 몸을 풀고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중요한 경기다보니 갑작스럽게 출전하기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감독님이 저를 믿고 마무리 투수로 세워 주신만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동안 경기에 서지 못하고 마음 고생하던 걸 한순간에 보상받는 기분이었어요.”
-다행이다. 당시 경기는 어땠나.
“실점을 하기도 했지만 동료 타자들이 점수를 많이 얻어서 이길 수 있었어요. 특히 9회 말이 정말 짜릿했죠. 투 스트라이크 원 볼이었을 거예요. 스트라이크를 하나만 더 얻으면 이기는 상황이었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슬라이더를 던졌는데 타자의 방망이가 헛돌아갔어요. 꼬박 1년을 준비한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거머쥔 순간이었죠. 그렇게 마지막 상대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고 동료들이 뿌려주는 시원한 물을 맞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라고요.(웃음) 저를 믿어주신 감독님의 기대에도 부응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죠.”
-중앙대 야구부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1학년인 만큼 선배를 뒷받침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어요. 그리고 중앙대 야구부의 우승에 기여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네요. 개인적으로는 방어율 1점대의 투수가 되고 싶어요. 힘든 목표죠. 그렇지만 저는 빠른 공으로 승부하는 투수가 아니니까 삼진보다는 낮은 방어율에 욕심이 나네요. 모든 타자를 제 힘으로 잡을 수는 없잖아요. 저는 팀의 수비를 믿으면서 플레이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최소한의 점수만 내주면서 효율적으로 이기는 야구를 하고 싶어요.”
-프로에 간다면 어떤 팀에서 어떤 선수로 뛰고 싶나.
“프로라. 꿈만 같은 무대죠. 저는 두산 베어스에서 선발투수로 뛰고 싶어요. 더 많은 공을 던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두산 베어스는 투수 선수층이 두터워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꼭 이루고 싶어요. 최선을 다해 연습해서 어디에서든지 선발투수로 공을 던질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할 거예요.”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체격적인 조건으로 힘들어하는 선수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싶어요. 저는 중앙대 야구부 선배인 유희관 선수에게서 희망을 얻었어요. 지난해 입시가 끝나고 유희관 선수가 공을 던지는 장면을 봤거든요. 체격조건이 탁월하지 않은데도 프로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유희관 선수를 보면서 신체적인 한계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계기가 됐어요. 저도 저만의 장점을 키워내면 프로에서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희망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부모님께 효도도 꼭 하고 싶네요.(웃음)”
즐기는 자가 승리한다, 축구부의 최재영 선수
부상을 딛고 세계로
하루도 쉴 수 없는 이유
“그냥 재미있었어요.” 그동안의 선수 생활에 대해 묻자 최재영 선수(스포츠과학부 1)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11살부터 단 한 번도 축구가 재밌지 않은 적이 없었다. 2015년에 17세 이하 유소년 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을 때도 그는 그저 공이 차고 싶었다. 말 그대로 ‘즐기는 축구’를 하고 있다는 최재영 선수. 훈련을 마친 그가 땀에 젖은 모습으로 웃으며 다가왔다.
-고등학교를 벗어나 대학에 와보니 어떤가.
“사실 고등학교 때 상상하던 대학의 모습과 똑같아요. 일단은 계속 축구를 하고 있으니까요. 달라진 점이 있다면 좀 더 자유로워졌다는 점이죠. 대학생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선배들이 선배라는 명목으로 터치하지 않아요. 고등학교 때보다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 것 같아요. 팀으로 뭉칠 때는 함께 으쌰으쌰 하면서도 개인을 존중해주죠.”
-중앙수비부터 측면수비, 미드필더까지 만능 플레이어라고 하던데.
“움직이는 걸 좋아하고 활동적인 성격이라서 다른 포지션보다 공을 많이 만질 수 있는 미드필더를 선호하는 편이죠. 뛰고 싶을 때 마음껏 뛸 수 있잖아요. 가장 돋보이기도 하고요.”
-유소년 국가대표로 뛰어서 경기경험이 많겠다. 매 경기에 어떤 마음으로 임하는지.
“경기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연습 경기를 할 때는 월드컵 같은 대회보다 부담감이 덜하다 보니 즐기고 오자는 마음으로 경기에 들어가죠. 마음이 편하면 도전해보고 싶었던 기술을 시험하면서 몸에 익힐 수 있거든요. 중요한 경기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시도한다기보다는 제가 잘하는 것 위주로 경기해요. 이겨야 하니까요.”
-어떤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나.
“너무 많아서 꼽기가 힘들어요. 모든 경기가 재미있었거든요.(웃음) 중학교 2학년 때 춘계 맨유컵에서 우승했던 게 기억에 남네요. 첫 우승이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1학년인데도 3학년 경기에 들어가서 선배들과 함께 뛰었죠. 운이 좋았어요. 그렇게 2년 동안 꾸준히 경기를 뛰다가 3학년 때 부상으로 잠깐 쉬었어요.”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
“2015년 U-17 칠레 월드컵에서 브라질과 만났을 때였어요. 공을 뺏으려고 상대 선수에게 붙었는데 상대가 갑자기 돌아서는 바람에 크게 부딪혔어요. 처음에는 무릎이 너무 아파서 잔디밭에 누웠는데 밖에서 움직여보니까 좀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들어갔죠. 잠깐 뛰는데 뛸 수는 있을 것 같은데 패스를 못 할 것 같은 거예요. 뒤로 한 번 더 도는데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났어요. 그때 안 되겠다 싶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십자인대가 끊어졌대요.”
-정말 아팠겠다. 그때 기분이 어땠나.
“부상당했을 때가 전반전 시작하고 45분이 지났을 때였어요. 지금까지 해온 게 있었는데 고작 45분 만에 끝나버렸잖아요. 너무 아쉬웠죠. 그래서 엄청 울었던 것 같아요. 재활 훈련을 할 때도 친구들 뛰는 거 보면 같이 뛰고 싶었는데 참는 게 너무 힘들었죠. 친구들 실력 느는 거 보면 제가 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많이 불안했죠. 그래도 그때 잘 참아낸 덕분에 지금은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어요.”
-이후의 경기에서 완벽하게 재기했다던데.
“완벽한 재기까지는 아니었어요. 그때 몸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었거든요. 평소 몸 상태가 100%라면 그때는 50%밖에 되지 않았어요. 다시 경기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예전처럼 축구가 잘 안 되니까 힘들었죠.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본 훈련과 단체 훈련을 마치면 무조건 저녁에는 몸 상태를 올리기 위해 하체운동을 하는 식으로. 기본 4시간은 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대단하다. 힘들지는 않았나.
“하루라도 운동을 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몸이 굳는 것보다는 스스로 마음이 불안해요. 머리 쓰는 거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목표한 걸 다 끝내고 나왔을 때는 평소 같아서 괜찮은데 제대로 못 하고 끝내는 날에는 되게 찝찝하죠. 그래서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중앙대에서 어떤 게 가장 기대되는지.
“대학 리그나 대회를 가장 기대하고 있어요. 대학생들이 뛰는 경기를 경험해보고 싶어요. 고교 대회보다 더 빠르고 파워풀한 경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벌써부터 설레요. 체력적으로는 힘들겠지만 구경하는 것보다는 직접 경기에서 뛰는 게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잖아요.”
-어떤 선수로 성장하고 싶나.
“유럽 진출이요. 독일이나 영국, 스페인 쪽이면 정말 좋겠네요.(웃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제게 부족한 점을 하나씩 채워가야겠죠. 일단은 1학년에 선발로 뛰자는 게 목표예요. 보다 많은 경기를 뛰면서 저를 모르는 축구 관계자들에게 알려지고 싶어요. 부상 때문에 거의 1년을 쉬면서 많이 잊혔을 거예요. 제가 잘한다면 할 수 있겠죠. 열심히 할 거예요. 중요한 건 저 자신의 마음가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