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규의 시원한 籠談] 대학의 패기를 보여준 중앙대

by 최고관리자 posted Mar 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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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조원규 칼럼니스트] 2018 남녀 대학농구리그가 개막했습니다. 남대부 개막전은 전년도 정규리그 우승팀 고려대와 준우승팀 중앙대. 고려대는 5명의 걸출한 신입생이 합류하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팀입니다. 반면 중앙대는 5명의 주축 선수들이 프로에 진출하며 4강도 쉽지 않다는 예상입니다. 그래서 내심 싱거운 승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경기 양상은 예상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경기는 시종 접전이었고, 중앙대는 한때 13점을 앞서기도 했습니다. 고려대가 리드한 시간보다 중앙대가 리드한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중앙대의 작은(?) 선수들은 치열한 몸싸움과 많은 움직임, 놀라운 집중력으로 고려대를 괴롭혔습니다.

■ 199 vs 187

중앙대는 빅맨 박진철과 김준성이 부상입니다. 박건호(200cm)가 있지만 구력이 짧고 경기감각도 부족합니다. 양형석 감독은 높이 경쟁 대신 스피드와 운동량으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190대 선수가 불과 2명인 스몰라인업. 40분 내내 중앙대의 평균 신장은 187cm에 불과했습니다.

고려대 선발 5명의 평균 신장은 194cm. 2쿼터에는 박정현과 하윤기, 신민석을 동시에 기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선수들이 나왔을 때의 평균 신장은 무려 199cm입니다. 평균 신장 차이가 10cm 이상입니다. 그러나 우려했던 제공권의 열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4쿼터 체력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중앙대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리바운드에 가담했습니다. 고려대 선수들이 대체로 제 자리에 서서 점프를 한 반면, 중앙대 선수들은 공이 떨어지는 위치에 달려들어 리바운드를 잡았습니다. 열심히 박스아웃을 했고, 두 명 세 명이 세 번 네 번 경합하며 기어이 리바운드를 잡았습니다.

수비는 타이트했습니다. 포스트에서 공을 잡은 고려대 선수들에게 공간을 주지 않기 위해 강하게 몸싸움을 했습니다. 그렇게 버티는 동안 동료들은 공을 가진 선수를 에워싸며 어려운 선택을 강요했습니다. 그렇게 8개의 스틸을 성공했고, 6번의 속공을 성공시켰습니다. 고려대보다 2배 많은 스틸이고, 3배 많은 속공이었습니다.

고려대 서동철 감독이 구상했던 빠른 농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비 리바운드를 잡아도 가드에게 공 전달이 쉽지 않았습니다. 리바운드를 경합했던 중앙대 선수들은 아웃렛 패스를 지연시켰고, 나머지 선수들은 빠르게 백코트로 복귀했습니다. 고려대는 믿었던 3점포까지 침묵하며 좀처럼 반전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 공 없는 움직임과 활동량

두 팀의 가장 큰 차이는 활동량입니다. 특히 공을 가지지 않은 선수들의 움직임에서 두 팀은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중앙대 선수들은 공을 잡기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계속 움직였고, 동료들은 스크린을 서서 수비의 접근을 차단했습니다. 반면 고려대의 공 없는 선수들은 서 있는 모습이 많았습니다.

중앙대가 이 날 기록한 어시스트는 13개. 그 중 절반이 넘는 7개가 이진석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중앙대의 공 흐름이 얼마나 원활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중앙대 선수들은 드리블을 짧게 하고 공 없는 움직임을 많이 가져갔습니다. 이진석의 많은 어시스트는 이런 움직임에서 나왔습니다.

활동량은 리바운드 수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앙대의 가드 김세창과 이기준은 각각 6개, 8개의 리바운드를 잡았습니다. 두 선수의 신장은 182cm와 180cm. 코트에 나온 고려대 선수들 중에 두 가드보다 신장이 작은 선수는 없습니다. 이진석은 고려대의 장대 숲에서 14개의 리바운드를 획득했습니다. 리바운드를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높이가 아닌 열정이었습니다.

에너지 레벨에서 두 팀은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고려대가 시종 정적이었던 반면에 중앙대는 활기차게 뛰어다녔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습니다. 경기 후반부로 갈수록 중앙대 선수들의 체력이 소진되고 파울이 늘어났습니다.


■ 32분 34초 vs 33분 58초

고려대는 9명의 선수가 코트를 밟았습니다. 그 중 가장 오래 코트에 있었던 선수는 32분 34초를 뛴 박정현입니다. 중앙대는 선발 5명을 제외하면 가드 성광민만 코트를 밟았습니다. 이진석과 문상옥은 풀타임을 소화했고, 신민철은 경기 종료 52초를 남기고 5반칙 퇴장당하기 전까지 계속 코트에 있었습니다. 선발 5명 중에 가장 짧게 코트에 있었던 선수는 33분 58초를 소화한 김세창.

양형석 감독은 경기 후반 체력과 파울 관리를 위해 지역방어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 “생각보다 선수들이 영리하게 대처”했지만 “지역방어로 바꾼 것이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높이를 확실히 보강할 수 있는 교체카드가 마땅치 않았다”고 했습니다. 신입생 홍현준(193cm)의 교체도 고려를 했지만 ‘높이의 확실한 보강’은 아니었고, 꾸준히 호흡을 맞춘 선배들의 정신력을 믿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아쉬운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 못할 선택도 아닙니다. 김세창 대신 성광민이 코트에 있었을 때 중앙대의 경기력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조합은 체력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결과만으로 판단하기에 중앙대가 보여준 과정은 훌륭했습니다.

 

■ 통합우승을 노리는 고려대의 과제

“어제 편하게 잠을 못 잤습니다. 우리는 높이가 좋은데, 작고 빠른 중앙대 선수들을 상대로 강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습니다. 높이와 스피드를 함께 살리고 싶었는데…. 높이를 살릴 때와 스피드를 살릴 때를 상황에 따라 선택을 해야 하나 생각도 했습니다.”

경기가 끝난 다음날 서동철 감독과 전화 인터뷰를 했습니다.

대학농구 데뷔전 승리를 축하한다는 덕담에 “어제 잠을 잘 못 잤다”는 대답으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서동철 감독이 원하는 빠르고 공격적인 농구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의 프로진출 이후까지 고려한, 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많이 보여주지 못한 점도 아쉬워했습니다.

부임 후 2개월 동안 선수들을 많이 파악했지만 훈련과 실전은 또 다릅니다. 어쩌면 그것을 확인한 것이 지난 경기의 가장 큰 소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만날 한양대와 단국대는 중앙대 못지않게 빠르고 외곽 슛이 좋은 팀입니다. 중앙대는 고려대를 상대할 해법을 다음 팀들에게 제시했고, 이제는 서동철 감독이 해법을 파해할 묘수를 찾을 차례입니다.

 

■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자고 얘기했습니다. 상대와 무관하게 전력투구해야죠. 4쿼터에는 (박)진철이가 버텨줬으면 하는 생각이 제일 컸고…. 진철이도 빨리 복귀하고 싶다고 하는데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올해만 농구하는 건 아니잖아요.”

양형석 감독은 고민이 많습니다. 주전 센터 박진철 없이 최소 5경기 이상을 치러야 합니다. 강병현과 이진석, 문상옥도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닙니다. 강병현은 개막전에 결장했고, 2월에 무릎 부상을 당한 이진석도 계속 경기를 뛸 수 있을지 2쿼터부터 몸 상태를 체크해야 했습니다. 좋은 경기를 했음에도 양형석 감독이 웃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희가 전력이 약해진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지금 4강이 목표다, 결승이 목표다 확정지어서 말씀드리기는 어려워요. 우리는 작년, 재작년 꾸준히 상승 흐름을 이어왔습니다. 최선을 다하면 그런 흐름에 크게 역행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패기와 열정’은 대학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한 걸음 먼저 딛고, 한 발 더 많이 뛰면서 전력의 차이를 지워가는 선수들의 투지는 스포츠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감동입니다. 2018 남녀 대학농구리그 개막전은 대학스포츠의 매력과 감동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습니다. 멋진 무대를 선보인 중앙대 선수들의 투지는 그 어떤 개막식의 불꽃놀이보다 화려했습니다.

#사진=한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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